2017년 정유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과도한 운동과 과도한 음주로 머리가 흐리지만 그래도 펜 끝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해 본다). 이 말은 나에게는 쉰두 살의 한 해가 저문다는 뜻이다. 중년에서 이제 장년(長年)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머지 않아 노년이라는 말이다. 몸이 노쇠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따라서 빛깔이 좀 바래면 좋을 텐데,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학업의 과정도 아직 마치지 못한 나로서는 많은 부분이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이고, 그래서 내 안의 욕망과의 타협점을 잘 찾지 못한 채 가끔씩 마음이 이는 바람에 날아가는 마른 나뭇잎처럼 정처없기도 하다.
어제 우리 탁신도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송년회를 가졌다. 고기와 술로 배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도 아닌데(크리스마스 때도 우리는 선물을 잘 주고 받지도 않지만) 남은 회비와 회원들이 찬조한 각종 상품을 난해하기 짝이 없는 퀴즈풀이로 득템하던 년례 행사는 올해는 없었다. 못 나온 회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10월 [탁신 회장배 2인 단체전] 때 이미 유니폼을 포함하여 푸짐하게 상품을 돌렸기 때문에? 그 대신에 그 동안 잘 안 나오던 회원들을 비롯하여 멀리 지방에서 상재 형, 성욱이, 재성이 등이 올라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뜻 깊었다.
(여기까지 썼다가 숙취를 이기지 못해 중단했다가 오늘(18일) 다시 쓴다.)
탁구 귀신들이 모인 곳인지, 탁구의 신발들이 모인 곳인지 여하튼 내가 탁신에 들어온지도 벌써 14년이 지났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30대 후반이던 내가 50대 초반이 되었으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셈이다. 그리고 당시 30대가 주축이었던 탁신의 멤버들도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었고 젊은 피도 많이 수혈되어 20대부터 50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그런 모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탁신이 언제 생겼는가? 올해로 이십 육칠판 년?은 된 듯하다. 창립을 할 때 거창하게 체계를 갖추어 출발을 한 것이 아니라서 창립 멤버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의 기억이 조금씩 충돌하는 듯하기도 하다. 거기다 우리 동호회는 명문화된 회칙도 없다(그런 것을 못 박지 않기로 한 것이 큰 원칙인가?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다).
처음엔 모두 탁구가 취미였는데, 요즈음엔 탁구가 주업인 멤버들도 많고, 또 부업으로 하는 멤버들도 있다(나 또한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느라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2번 2시간 씩 고등학교에 탁구 수업을 하러 간다). 그냥 탁구장에 가면 맞상대가 될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데, 송년 모임에 온 서른 명에 가까운 멤버들 대부분이 나와 맞수이거나 고수이다. 고수 중에 한참 고수인 멤버들도 있는데, 요즈음은 운동량이 부족해서 인지, 아니면 고수랑 칠 기회가 없어서인지, 어떻게 쳐야 할 지도 모르겠고, 아예 짜증이 난다. 그러니까, 탁신 멤버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이마에 탁구라는 두 글자의 붉은 화인이 깊게 찍여 있는 사람들이다(민우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 탁구를 못 치니까 왼손으로 열심히 탁구를 치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빛깔이 바랜 사람들도 좀 있지만 그래도 여차하면 옛날의 그 시퍼런 칼날을 뽑아 상대를 베어버릴 기세다.
탁신에 들어오고 지난 14년이 어떻게 지나갔던가? 탁신은 예전에는 1부와 2부(그 때는 지금처럼 2부까지 통합이 아니었고 우리는 1,2부 시합만 나갔다. 예전에는 3부 정도까지밖에 시합이 없지 않았나?)에서 성적을 곧잘 내곤 했다. 내가 탁신에 들어온 다음 해에 열린 제1회 니타쿠 대회에서는 우리 탁신이 2부 두 팀이 나가 우승, 준우승을 할 정도로 무적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 나이도 들고, 또 시합 때마다 다른 팀들은 최강 우승조를 짜서 나오는 바람에 성적을 내는 것이 쉽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작년 아산 충무공 시합에서는 2부까지 통합 시합에서 우리 팀이 또 우승, 준우승을 했구나. 내 개인적으로는 오륙 년 전 성남 시합에서 3부로 개인전 3위를 하고, 단체전 준우승, 그 다음 해 시합에서인가 단체전 우승을 하고 난 다음, 4부로 내려와서는 한 번도 입상을 못했다. 작년 탁신 최강전에서 잠시 헷가닥해서 단식, 복식 우승을 했지만, 그 다음에 나간 외부 시합에선 예선 탈락을 하고 말았다(작년 10월에 열린 성북구청장 배에서는 2부로 참가해 개인전 우승을 한 것이 있구나).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탁신 멤버들과 많이 친해졌다. 일단 탁구라는 확고한 구심점이 있어서 몸으로 부딪히고, 또 술자리를 같이 하고 하면서. 저마다 개성이 강해서 걔중에는 나와 죽이 더 맞는 멤버가 있고, 약간 마음이 덜 맞는 멤버도 있지만. 그러고보니 지금은 활동이 뜸하지만 성찬이에게 탁구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도 탁신에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었구나. 탁구를 좀 더 잘 치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뒷받침 해주지 못하는 감각이나 몸, 그리고 부상, 그런 것에서 오는 갈등. 또 탁구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더 중요한 일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 등등.
어쨌거나 저쨌거나,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모임 외에도 탁신 멤버들과 탁구를 치는 것은 큰 즐거움 중 하나였구나(무슨 말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제는 그냥 붓가는 대로 쓴다). 혼자 인데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일산파, 구리파, 안양-의왕파, 청주파, 제천파, 대구파, 심지어 광주파까지도 섭렵을 했구나. 이제는 그럴 여력도 열정도 사그러 들었는가?
그런데, 십여 년의 장기집권의 바통을 작년에 이어받은 신임 회장뇜은 나보다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탁신을 이끌고 혹은 따로 여기저기 시합을 다닌다(그 덕택에 안양 시 탁구 협회로부터 최초로 공로패를 받았지만, 그 동안의 거짓말들이 형수님에게 들통났다는 후문도 있었는데). 언제까지 탁구를 치게 될지, 육십이 넘어서도, 칠십이 되어서도 탁구를 치고 있을 지 -- 그 때까지 살아있을 지--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대광에서 명지로 정기 모임의 장소를 옮겼는데 매달 한 번 모이는 이 정기모임에는 정말 큰 일이 없다면 --탁구만 치고 가든지 아니면 뒷풀이만이라도 참석하든지 -- 빠지지 않고 싶다.
년말이고 여기저기 몸도 마음도 아파서인지 자꾸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문득 나이는 들었지만 그 기개만큼은 꺾이지 않았음을 노래하는 알프레드 테니슨의 [율리시즈]라는 아주 유명한 영시가 떠오른다.
비록 많은 것 사라졌어도, 많은 것이 남아있지.
이제 우리 천지를 뒤흔들던 옛날의 그러한 힘은
없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인 것.
그건 한결같은 영웅적 기백,
시간과 운명에 빛깔이 바랬지만,
노력하고, 추구하고, 탐색하며
굴복할 줄 모르는 강한 의지야.
탁신의 젊은 멤버들이 다수의 노땅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탁구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내년에도 열심히 땀 흘리고(피는 흘리지 말고) 어울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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