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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0807 (탁구 레슨을 받다가)

by 길철현 2016. 8. 7.


[글로 제대로 표현이 될지, 또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가 그냥 기대로 머물지 알 수는 없으나, 일단 글을 밀어본다.]


정황은 이렇다. 며칠 전 탁구 레슨을 받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탁구 레슨 중에 강도가 높은 것이 볼박스 -- 탁구를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설명을 약간 해본다면, 코치가 탁구대 내 편에 공을 손으로 연속해서 던져주면 레슨을 받는 사람은 그 공이 오는 대로 치는 것이다. 공을 한 곳에만 주기도 하지만, 좌우, 전후로, 또 때로는 불규칙으로 던져 주기 때문에 스텝을 밟으며 공을 쫓아다녀야 해서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체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 볼박스는 늘 숨을 턱 밑까지 차게 한다. 공을 쫓아 다닐 수 있는 체력과 볼 파워를 기르는 데에는 적격인 훈련 방식이다. --인데,  그 중에서도 불규칙 드라이브 -- 탁구를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쉬운 용어이지만, 이 드라이브란 용어도 설명을 좀 해본다면 공을 정면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약간 비껴 올려치는, 그러니까 스윙의 궤적이 직선적이라기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내가 알기로는 1970년대에 이 기술이 나왔다고 하는데, 왜 이름을 드라이브로 붙였을까? 이야기가 초점을 벗어나 옆으로 새려 한다. 덧붙여 불규칙 드라이브가 다른 볼박스 훈련, 전후, 좌후 풋워크, 삼오구, 삼오칠 구 등등보다 딱히 더 힘든 것은 아니다. --를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원래 제대로 된 스텝은 드라이브를 걸고 난 다음 스텝을 한 번 더 밟아주어서 다음 공에 대비를 해야 하는데, 지친 내 다리는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그 스텝을 제대로 밟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코치가 "지치셔서 스텝을 제대로 밟지 않네요"라고 말했고, 나는 "생각과는 달리 몸이 알아서 스스로 그렇게 반응하는 거지"라고 대답했다(나의 탁구 코치는 나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어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아왔기 때문에, 코치가 나에게 존대를 하고 나는 코치에게 반말을 한다. 나는 두 사람의 상호 호칭을 중국어로  씨푸(사부)와 따거(큰 형)로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코치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냥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그래요, 뇌가 알아서 반응을 하는 것이지요. 한계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뇌가 알아서 제어를 하는 것이지요."


분명 코치는 나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순간적으로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상반된 것으로 비치는 이야기가 결국에는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며칠 전에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이 생각 -- 생각이라기보다는 인상에 가깝지만 --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 것인가, 아니면 그야말로 그냥 순간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를 추적해 보려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직관 혹은 통찰력이라고 볼 수 있는 그 생각이, 단순히 우리가 흔히 영어로 'jumping to conclusion'이라고 하는 논리적 비약이나 속단은 아니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닐 수가 있고, 그렇다면 계속 물고 늘어져야 할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일단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기분으로  적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첫 걸음은 역시나 쉽지가 않다.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나의 글은 일단 여기에서 일단락을 짓는다. 본격적인 글을 쓰려고 생각하니까 이 문제는 인식론 - 또 인식론의 일부이면서도 인식론의 한계를 이야기한 회의론(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과 연결되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개진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턱 없이 짧다, 라고 썼는데, 이것은 궁금증을 유발해보려는 치기어린 술책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회피.


그래서 다시 몇 자. 이 문제는 나의 큰 화두인 - 왜 이것이 화두가 되었는지가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데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흔히 칸트가 '물자체'라고 한 것,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 아니 말할 수 없다는 것 조차 말해서는 안 되는, 그래서 침묵이라고 해야겠지만, 아니면 니체가 신비로운 X라고 부른 사물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느낌이다(이것 또한 나의 주관적인 속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부족한 대로 나의 생각을 쓴다). 보이지 않는 벽이기에 이 둘은 일치의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좀 더 적절한 비유가 있다면)이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장벽이라는 느낌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 그렇다고 좌절만 할 수는 없는 노릇.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어도, 언어의 세계 또한 무한에 가까움으로 언어의 세계를 심화 확장하다 보면?


걸음을 내딛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다시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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