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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김승희 -- 나는 타오른다

by 길철현 2022. 3. 5.

   니체는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반드시
   <나는 고뇌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하여 그의 책속에는
   한 페이지마다
   <나는 고뇌한다>는 문장이
   마치 피묻은 붕대처럼
   여기저기 사방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나는
   하나의 화폭을 마칠 때마다
   반드시
   <나는 타오른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의 그림 속에는
   한  페이지마다
   <나는 타오른다>는 문장이
   마치 희열의 격분처럼
   검은 불꽃나무 사이프러스처럼
   소용돌이쳐 쏟아지고 있었다.
 
   니체와 나는
   인간들의 악취로 숨이 막히는
   이 우스꽝스러운 동물원 속에서
   고뇌하다가
   타오르다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고뇌하면서 타오르는
   신의 얼굴.
   세상에서 가장 난폭하게 미쳐 있는
   해바라기
   연작들
 
   나는 묻는다
   미치지 않고서는
   좀더 타오를 수 없었을까.
   미치지 않고서는
   타오르는 해바라기 속의 소용돌이치는
   심령을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살아있는 동안
   나는 온몸으로
   소용돌이치는 글씨를 써야 한다.
   <나는 타오른다>고 -
   그리고 색채에 취하여
   영원히 언덕과 보리밭을 달려가야만 한다.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위하여
   영원히 영원히
   찬란한 간질성의 질주로 -

[출처] 타오름, 불, 해바라기 |작성자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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