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탁구의 길 10

by 길철현 2023. 8. 15.

탁구의 길에는

이제 막 포핸드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에서부터

스트로베리 신기술마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프로 중의 프로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대가 그 넓은 스펙트럼의 어디에 있던

탁구의 길로 들어선 이상

성심성의껏 탁구의 신을 받들어야 한다

탁구의 신은 그대의 노력에는 물론

그대의 기도에도 일절 답하지 않는다

다만 말없이 얼음보다 차갑게

그대가 친 공의 향방을 결정할 뿐이다

그대가 탁구의 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순간

상대와의 다툼은 시작되고 

손목이 삐끗하고

엘보가 찾아오고

회전근개가 파열되고

목과 허리와 무릎의 통증은 배가 할 것이다

자칫 탁구의 길을 떠나 범부의 생을 살아야 한다

탁구의 신이 바라는 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언제나 성심성의껏 받들어야 한다

준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상대가 하수이든 고수이든

내 부족함을 채워줄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그대의 열과 성을 탁구의 신에 바칠 때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기도록 노력하라*

 

 

*마지막 3행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나오는 말을 약간 바꿔 인용했다.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한 것이 저수지이지요  (0) 2023.08.16
길을 놓치다  (0) 2023.08.15
그 순간  (0) 2023.08.14
The road to the reservoir is open all the time  (0) 2023.08.13
저수지로 가는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0) 2023.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