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 했지*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호한 시학 아닌가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
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
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
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
비록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메마른 사막에 감춰진 수맥이라도
촉촉하고 부드럽게 살려내는
그 짧은 글이 바로 시 아닌가
어려운 시학 잘 모른다 해도
* 예컨대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학'에 나오듯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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