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가지게 된 두 가지 의문은 첫째는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트럼프를 과연 누가 지지하고 있는가? 약간 다른 차원에서 말해보자면, 쟁쟁한 공화당의 타 후보들을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는 것과, 둘째는 대통령 부인으로, 또 상원의원으로, 더 나아가서는 국무장관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를 했고, 표면적으로 반듯하고 밝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에 대한 의혹이나 비난 여론이 상당한 것은 왜인가? 하는 점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승승장구를 해온 것은 백인 중*하층 계급이 느끼는 역차별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잘 건드려주고, 그리고 기존 정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클린턴은 이메일 문제를 비롯하여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경제 문제는 물론, 중동 문제 등 미국의 정책 실패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 TV 토론회를 보면서 뚜렷하게 든 생각은 트럼프는 역시나 정책의 제시 등에 있어서 구체적이거나 건설적이지 못하고, 현재 상황의 문제점들만 소리 높여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타협점이나 조정보다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뚜렷했다. 환경 문제나, 이슬람 국가와의 문제, 인종 문제 등에 대한 클린터의 견해는 좀 더 구체적이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토론 후 논평가들의 이야기에도 드러나듯, 트럼프는 자신의 과거의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과거에 분명 찬성을 했음에도 자신의 반대를 했다고 당시 인터뷰한 기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거짓말을 했다. 세금 관계 문제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글을 적어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나 역시도 클린턴에 대한 호감과, 트럼프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트럼프의 주장에 들어있을 장점들을 평가절하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업가로서의 트럼프는 성공을 거두었는지 모르겠으나, 정치가로서의 트럼프는 언술이나 정책 등에 있어서 정교함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왜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에 열광하는가? (물론 미국의 백 대 기업 CEO 중 한 명도 트럼프를 지지 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굉장히 높고, 그 때문에 폭력사태까지 빚어지는 형국이지만.) 얼마 전 911 추모행사에 참석했던 클린턴이 쓰러지자 트럼프와 클린턴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 범위 내까지 이르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트럼프의 지지울이 클린턴의 지지율을 앞서기도 했다.
이번 첫번째 TV 토론은 클린턴의 압승으로 끝난 것으로 대체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클린턴에게 우호적으로만 작용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과연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예이츠는 일찌기 "최악의 무리가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최선의 무리는 일체의 확신이 없으니"(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참으로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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