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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들꽃

by 길철현 2024. 11. 25.

들꽃

                권혜경(86)

 

어둠이 산등성일 타고 내려올 무렵.

겨울부터 지금까지 한이 서린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저만치

들려온다. 까맣게 그을린 초동의

풀피리 같은 소리가

 

촌부(婦)의 구릿빛 살갗을 닮은

산언덕길 흙 위에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졌던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가.

코끝을 간지르는 남풍에

무심히 떨고 있는 

빛바랜 무명 치마 같은 꽃잎.

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꽃.

 

지천에 뒹구는 돌덩이, 흙덩이만큼

그렇게 온 산을 메우고 있건마는, 오히려

우리 누나 고운 미소 같은 꽃이여.

누구나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더욱이, 애절한

아름다움이여.

 

고이 생명이 침전해 있는 동안

모든 웃음과 울음 캐어 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샘처럼

생명력이 충일해 있는 

이 들꽃.

사랑보다 미움이 많았던 일월들이

괴롭히며

얼마나 많이 울며 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