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권혜경(86)
어둠이 산등성일 타고 내려올 무렵.
겨울부터 지금까지 한이 서린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저만치
들려온다. 까맣게 그을린 초동의
풀피리 같은 소리가
촌부(村婦)의 구릿빛 살갗을 닮은
산언덕길 흙 위에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졌던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가.
코끝을 간지르는 남풍에
무심히 떨고 있는
빛바랜 무명 치마 같은 꽃잎.
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꽃.
지천에 뒹구는 돌덩이, 흙덩이만큼
그렇게 온 산을 메우고 있건마는, 오히려
우리 누나 고운 미소 같은 꽃이여.
누구나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더욱이, 애절한
아름다움이여.
고이 생명이 침전해 있는 동안
모든 웃음과 울음 캐어 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샘처럼
생명력이 충일해 있는
이 들꽃.
사랑보다 미움이 많았던 일월들이
괴롭히며
얼마나 많이 울며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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