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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도시의 밤은 피로하다

by 길철현 2024. 12. 4.

일종의 과부하다

부산한 낮이 전을 걷기도 전

형형색색의 네온이 불을 지피면

밤은 오히려 낮보다 밝게 흥청인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굳이 증명하려는 듯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할 지는 잘 모르고

 

인간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

손에 손을 맞잡은 청춘 남녀는

은밀대답한 눈빛을

종잡을 수 없는 대화 위에 싣고

찻집으로 술집으로 그리고 모텔로

밤의 짧음을 한탄하고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느닷없는 웃음소리에 연이어

한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나가기라도 한 듯

차마 제정신으로는 온전히 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자를 향한

참담한 저주의 욕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펀치 볼에 쏟아붓다가

눈 내리 깔어, 이 씹새야

지나가는 사람에게 피를 부르는 시비를 걸다

달려오는 자동차 앞으로 달려 나가

아무것도 모르는 자동차와 힘겨루기를 하는

아니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실험

 

급기야 먹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반납하리라

양심선언을 하는 부패한 공직자인양

무릎 꿇고 엎드려 자신의 죄를 게워내고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 없어

천진난만 이상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과의 대화에 한없이 몰두하는 여인

 

아무리 해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여인의 대화에라도 슬쩍 끼어들고 싶지만

가슴에 품은 비수를

하필 그 순간에 뽑아 들고

여자의 가슴을 찌르지는 않을까

어깨를 더욱 웅크리고 터벅뚜벅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

 

만날 수 없는 만남은 만날 수 없다는

지극한 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지칠 줄 모르고

깊은 밤의 도시를 배회하는 남자

 

밤의 도시는 겹겹이 피로하다

 

(201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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