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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신현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1994 [2000년]

by 길철현 2016. 12. 1.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94

<깨어 펄럭이는 여자>

신현림의 첫시집을 읽고 난 소감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녀의 거침없는 언어가, 종횡무진 왔다갔다 하는 어지러운 언어의 몸짓이, 그리고 사진과 그림, 꼴라쥬 등을 도입하는 과단성이 부럽다고 해야할 지, 좀 더 견디지 못하고, 좀 더 탁마하지 못하고 날뛰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해야할 지. 이러한 느낌은 표제시를 다시 읽어보니까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있을 때 비로소

나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빨간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깊고 맹목적인 충동이겠죠

내가 너의 뺨을 만지면 나를 살게 하는 힘

서로를 잃지 않으려고 깨어있게 하는 힘

그래, 잃는다는 것은 죽음만큼 견디기 힘든 것

삶은 지겹고 홀로 괴롭고 잃는다는 것을 견디는 일

 

우리는 시인의 이러한 직정적인 표현에 공감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솔직함을 넘어서서 단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이 과연 시에서 잘 용해될 수 있는가, 한 편의 시가 이러한 단정적 표현을 감당할 만큼 큰 그릇이 되기가 쉬운가의 문제이고, 나는 여기서 신현림 시의 미숙함을 지적하게 된다.

정효구가 신현림이 파악한 자아와 세계는 끝도 없는 어둠과 불안과 고독과 우울과 죽음과 슬픔, 그리고 공허와 위기와 고통과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116)’라고 지적하고 있듯이, 그녀의 많은 시는 암담하다. 시인 자신의 이십대를 그린 <나의 이십대>([세기말 블루스], p66-71)라는 시를 보면 그녀가 겪은 삶의 시련이 상당한 무게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시에 표현된 그런 개인적인 고뇌가 사적인 토로가 아니라 시적 형상화를 성취했는가일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시들은 그녀 개인의 삶과의 불화를 여과를 거치지 않고 붉어져 나온 듯한 느낌이다. 그것이 때로 강렬한 힘을 갖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시 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 혹은 감동을 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리라.

안타깝게도 이 한 편의 시집 가운데서 나는 나의 가슴에 다가오는 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질상 그녀와 내가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작품 한 편 한 편의 완결에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징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시가 시로서 지녀야할 품격 같은 것은 집어치우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품격은 쉽사리 집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