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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63

재인폭포 6 - 시작 노트에서(20000825) 작년 가을, 동생 간호를 위해 십 개월 가량 대구에 머물렀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올 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곧바로 오지 않고, 동해안을 따라 양양까지 가서는 한계령을 넘었다. 그때 처음으로 대승폭포를 보았는데 그 높은 높이에 비해 수량이 적은 것이 매우 아쉬웠다.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그래서, 내 안의 풀리지 않는 슬픔을 울리라. 내심 이렇게 작정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장마가 들기를, 폭우가 쏟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올 유월, 집중호우가 쏟아지리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으나, 성급한 시도였다. 대승폭포는 기운찬 물줄기를 허공에 내뿜고 까마득한 벼랑을 따라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올 여름 내내 폭포를 찾아다니는 일은 미진함.. 2023. 8. 23.
재인폭포 5 - 천년의 문 (19991231) -- 아름다움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는 허망함이 우리를 감싼다. 반면에 고통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동아리 후배들과 망년회인지 뭔지를 하느라고 밤을 새우고 아침 무렵에야 잠이 들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오긴 했어도, 폭포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동차에 달린 시계의 숫자가 이미 오후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짧은 겨울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의식의 놀음임에도 불구하고 한 천 년이 지나가고 새 천 년이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 위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무덤덤할 수만은 없었다. K는 폭포로 가 폭포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새 천 년에는 더 큰 슬픔은 없을 것이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니 폭포에서 새 천 년을 맞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2023. 8. 21.
재인폭포 4 - 야외 수업(19980516)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어이, 거기 키 큰 남학생, 자꾸 옆의 여학생만 쳐다보지 말고 앞쪽의 폭포를 보세요. 그래, 자네 말이야, 자네. 자네, 폭포에 대한 정의를 한 번 내려 보게.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고. 그렇지. 좀 더 덧붙이자면 계곡이나 혹은 강에서 물이 일정 정도 이상의 편차를 두고 수직으로 혹은 수직에 가깝게 흘러내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 내 목소리 잘 들려요? 그래도 지금은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은 편이라서 이 정도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지요. 폭우가 한차례 지나간 다음에 폭포가 온 힘으로 떨어질 때는 그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릴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간이 되면 폭우가 한바탕 지난 다음에 폭포를 한 번 보러 가보세요. 이 재인폭포.. 2023. 8. 20.
재인폭포 3 - 울음소리(19970517) K가 탄 자가용은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총을 든 군인 두 명에게 제지를 당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나 하고 순간적으로 K의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왜 그러는데요?” “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폭포 보러 왔는데요.” “아, 재인폭포는 열두 시가 돼야 개방이 됩니다.” 군인의 말에 길옆 철조망 상단부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니까, 재인폭포가 있는 곳은 군 작전 지역이라, 7월과 8월에만 전면 개방을 하고, 그 밖에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그리고 국경일에만 개방을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일요일이라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가용의 계기판에 달린 시계는 열한 시 십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냥 되.. 2023.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