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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7

김광규 - 어딘가 달라졌다 어딘가 달라졌다                                    김광규 어딘가 달라졌다 그는두 팔로 운전대를 감싸안고고개를 잔뜩 앞으로 내민 채전후좌우로 쉴새없이 눈을 돌리다가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쪼르르 달라나가고 교통경찰이 없으면 종로 한가운데서도날쌔게 왼족 골목길로 꺾어들어간다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바깥 세상을 살피는생쥐처럼 반짝이는 눈재빠른 움직임그렇구나 운전을 시작한 뒤부터그의 눈빛과 몸놀림이 달라졌구나착하고 맑은 사슴의 눈으로 한때어릿거리며 천천히 걸어오던 명륜동 길로보행인들을 헤치고 자동차를 몰면서 그는변해야 산다고 말했다그는 젊어진 것 같았다 *어릿거리다 말과 행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생기 없이 움직이다. (어렴풋하게 자꾸 눈앞에 어려 오다.)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2024. 8. 21.
김광규 - 끝의 한 모습 끝의 한 모습                                      김광규                                      천장과 두 벽이 만나는 곳세 개의 평면이 직각으로 마주치는 방구석의 위쪽 모서리가가슴을 답답하게 한다빠져나갈 틈도 없이한곳으로 모여 눈길을 막아버리는 뾰족한 공간이낮이나 밤이나나를 숨막히게 한다빗소리와 새들의 노래 들려오는 창문산수화 한 폭 걸려 있는 넓은 벽현등이 매달린 천장 이들이 마침내 이렇게 만나야 하다니못 한 개 박혀 있지 않고 거미줄도 없는 하얀 구석에서앞으로 갈 수도 없고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꼭지점에서 멈추어 이렇게 끝내야 하다니결코 바라보고 싶지 않은낮의 한구석그대로 눈길을 돌릴 수 없는 밤의 안쪽 모서리 * 현등(懸燈) 등을 높이 매닮... 2024. 8. 21.
김광규 - 모르쇠 모르쇠                             김광규  삼십 년이 지나갔어도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이마가 넓었던 데 비하면별로 대머리가 까진 편도 아니고아직도 젊은 얼굴에 눈초리만 날카로워졌다누가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받기는 했지만 돈을먹지는 않았다고 그는당당히 증언하기도 했다현금을 사과 상자에 넣어서또는 거액의 수표로아니면 은행 구좌를 통하여도대체 큰돈을 받은 적 없이 살아온우리들만 변함없이 그대로 있지 않은가변해야 산다고역사는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고외치던 그는 이렇게 달라졌는데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28 - ‘받기는 했지만 돈을/ 먹지는 않았다’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 시는 타락한 정치인을 간략한 언어로 꼬집고.. 2024. 8. 21.
박세영 - 산제비 산 제 비                                  박세영 남국에서 왔나, 북국에서 왔나, 산상에도 상상봉,더 오를 수 없는 곳에 깃들인 제비. 너희야말로 자유의 화신 같고나,너희 몸을 붙들 자 누구냐,너희 몸에 아는 체할 자 누구냐,너희야말로 하늘이 네 것이요, 대지가 네 것 같구나.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고,주먹만한 네 몸으로 화살같이 하늘을 꾀어마술사의 채쭉같이 가로 세로 휘도는 산꼭대기 제비야너희는 장하고나. 하로 아침 하로 낮을 허덕이고 올라와천하를 내려다보고 느끼는 나를 웃어다오,나는 차라리 너희들같이 나래라도 펴보고 싶구나,한숨에 내딛고 한숨에 솟치어더 나를 수 없이 신비한 너희같이 돼보고 싶고나. 창들을 꽂은 듯 희디흰 바위에 아침 붉은 햇발이 비칠 제너희는 그 .. 2024.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