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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7

김광규 - 종묘 앞마당 종묘 앞마당                         김광규 빛 바랜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들중년의 퇴직자들과 엄마 잃은 아이들취직을 해보지도 못한 젊은이들과실직한 외국인 노동자들도 가끔 뒤섞여매일 길고긴 하루를 보내는 곳간이 녹지대와 종로 3가 보도 사이에리어카 주방을 차려놓고엘피지 가스로 오뎅을 끓이거나떡볶이를 굽는 조리대 앞에서웅기중기 선 채로 허기를 때우는 행인들틈바구니에서 용케도 밟히지 않고요리조리 옮겨다니며 음식 부스러기를 줍는 참새들다리가 빨간 보라색 비둘기들월남 선생의 동상 어깨와 포장마차 바퀴 밑을 오르내리며온종일 쓰레기를 주워 먹어 살이 통통히 쪘다조선 왕조가 잠든 종묘 앞마당에서 찌꺼기처럼 살아가는 우리 식구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2003. 48. * 월남 - 독립운동.. 2024. 8. 26.
김광규 - 작약의 영토 작약의 영토                          김광규   앞마당 추녀 앞에 옥잠화와 작약, 대나무와 모과나무, 진달래와 영산홍을 심었다.   꽃나무는 줄기도 없이 뿌리만으로, 갈잎나무는 벌거숭이 맨몸으로 겨울을 나지만, 대나무는 사계질 푸른 잎을 서걱거리며 덩치를 키워서, 이른 봄에는 키가 창문을 가리고, 옆으로 퍼진 가지는 옥잠화와 작약이 있던 자리를 뒤덮어버렸다.  작약의 새싹이 돋아날 무렵, 대나무가 이미 그 위로 퍼져서 햇볕을 가리고 물 주기도 힘들어 올해는 탐스런 함박꽃을 보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신록이 푸르러지는 5월, 하늘이 활짝 갠 날, 틀림없이 누구의 손길이 우리 집 마당을 스쳐간 모양이다.  대나무의 그 무성한 가지와 잎이 무슨 끈으로 동여매기라도 한 듯, 스스로 몸집을 .. 2024. 8. 25.
김광규 - 시여 시여                  김광규 두 돌이 가까워오자 아기는 말을 시작합니다엄마아빠 물. . . 강강지는 뭉뭉이고양이는 야우니그 다음에는시여. . . 싫다는 말입니다 벌써세상이 싫다니요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2003. 20. 2024. 8. 25.
송진권 - 나싱개꽃 나싱개꽃                    송진권 몸써리야 그까짓 게 뭐라구그 지경이 되서두 꼭 움켜쥐구 있더랴봉다리에 정구지 담다가 팩 씨러져서아무리 흔들어두 안 일어나더랴 구급차 안에서두 꼭 쥐구 있더라구병원 같이 따라갔던 국화가 얘기 안 햐나물 장사 오십 년 장바닥에 기어 댕기며맨날 벳기구 다듬는 게 일이라더이 이렇게 가구 나면 서방이 알아주나 새끼가 아나도척이 같구 아귀 같다구 숭이나 보지우리 거튼 장돌림들이나 그 속 알지 누가 알어 심천 할머니 가는 길에 돈 보태며거기 가서는 언 밥 먹지 말고뜨신 국밥이라두 사 먹어유 할머니 앉았던 자리 보도블럭 비집구싸래기 같은 나싱개꽃 피는디나물 장사 앉았던 자리 씨를 받아드문드문 나싱개꽃은 피는디 * 나싱개꽃 냉이꽃 - 친구의 페북에 올라온 걸 옮겨 적어본.. 2024.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