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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8

김광규 -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김광규 조심스럽게 물어보아도 될까. . . .역사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주먹을 부르쥐고 외치는 사람이누구 앞에서 눈물 한번 흘린 적 없이씩씩하고 튼튼한 사람이 하필이면왜 시를 쓰려고 하는지. . . .아무런 부끄러움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한 채언제 어디서나 마냥 떳떳하기만 한 사람이과연 시를 쓸 수 있을지. . . .물어보아도 괜찮을까. . . .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2003. 80. - 시란 큰 목소리를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조심스럽게.' 2024. 8. 30.
김광규 - 하루 또 하루 하루 또 하루                       김광규 느닷없이 암 진단이 떨어진 날부터우리의 건강한 동료 이선생이유기수가 되었습니다육개월 남짓기한만 채우면출옥합니다갑갑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요뒤에 남은 무기수들조만간 출옥할 가망도 없이 우리는계속 복역합니다억지로 견디는 것이지요버드나무 붙들고 울던 사람들불쌍하게 되새기면서헛된 희망의 세월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우리는하루 또 하루 습관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2003. 103. - 죽음을 출옥하는 것으로 보는 역발상이, 후반부의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뒤섞이며 시 이해에 약간 혼란을 불러온다. '헛된 희망의 세월'은 무슨 뜻일까? 2024. 8. 30.
김광규 - 끈 끈                       김광규 낡은 혁대가 끊어졌다파충류 무늬가 박힌 가죽 허리띠아버지의 유품을 오랫동안몸에 지니고 다녔던 셈이다스무 해 남짓 나의 허리를 버텨준 끈행여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물에 빠지거나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도록붙들어주던 끈이 사라진 것이다이제 나의 허리띠를 남겨야 할 차례가 가까이 왔는가앙증스럽게 작은 손이 옹알거리면서끈 자락을 만지작거린다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14. - 계속 이어나갈 전통을 낡은 혁대에 빗댄 시. 2024. 8. 30.
김광규 - 초록색 속도 초록색 속도                            김광규 이른 봄 어느 날인가소리 없이 새싹 돋아나고산수유 노란 꽃 움트고목련 꽃망울 부풀며연록색 샘물이 솟아오릅니다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며갑자기 바빠집니다단숨에 온 땅을 물들이는이 초록색 속도빛보다도 빠르지 않습니까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문지. 2003. 23. - 봄이 찾아와 온 산이 연두색으로 물들었다가 금새 진초록으로 바뀌는 광경은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탈바꿈을 한 겨울산의 모습과 함께 언제나 경이를 불러온다. 2024.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