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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7

김광규 -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김광규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기침을 하면서, 지나간 생애의 어둔 골목길을 더듬더듬 걸어갔다.  분명 근처에 있을 전철역을 찾지 못하고, 미국식 고층 건물들이 위압적으로 늘어선 강남대로를 무작정 헤매기도 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 몇 명이 못 알아들을 말을 지껄이며 지나갔을 뿐, 도대체 행인을 만나지 못했다.  하기야 지금까지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이들이었다. 아니면 사투리가 반갑고 음식 냄새가 구수해도, 경계해야 할 동포들이었다. 사람들이 잠들고, 돈만 깨어 있는 밤중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불도 켜지 않은 채, 모서리 창가에 앉아, 밤새.. 2024. 8. 23.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 후감김광규의 시는 산문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브레히트 적이라고 해야 할까?) 시 읽기의 어려움과 또 시 쓰기의 어려움을 일시에 깨어버리게 했다. 나의 시 쓰기는 그러니까 그의 영향이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그러한 방식의 시는 지속되면서 답답함과 지루함을 낳기도 했다. 그의 시에서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진 것은 김광규의 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그의 시의 결을 제대로 살려 읽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도 있었다. 표면적인 편안함 가운데 숨어 있는 미묘한 변주, 그러한 성찰이 주는 충격, 프로스트의 그것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빗대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남은 시집들도 꾸준히 읽어나가도록 하자.   * 성민엽. 두.. 2024. 8. 23.
김광규 -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가진 것 하나도 엇지만무명 바지저고리흰 적삼에 검은 치마맨발에 고무신 신고나란히 앉아 있는 머슴애와 계집아이사랑스럽지 않은가착한 마음과 젊은 몸뚱이밖에는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이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곳마다땅에는 온갖 꽃들 피어나고지붕에는 박덩이 탐스럽게 열리고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가득하네팔을 꽉 끼고 함께 뭉치면믿음직한 두 친구뺨을 살며서 마주 대면사이 좋은 지아비와 지어미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너와 나의 어버이가진 것 하나도 없이 태어났지만슬기로운 머리와 억센 손으로힘들여 이룩한 것 많지 않은가어느새 여기에 와 앉아 있네우리의 귀여운 딸과 아들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118-119. - 김광규의 시가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에 대한.. 2024. 8. 23.
김광규 - 듣고 싶은 입 듣고 싶은 입                                             김광규 맥주와 포도주는 물리지 않았다. 그러나부르스트와 케제, 감자와 돼지고기, 닭튀김과 훈제 연어 따위에 넌더리 났다.한국 식당이나, 때로는 교민 가정에서고추장, 김치, 된장국, 불고기, 잡채, 생선구이 따위를배불리 먹고 돌아와도외국시 번역처럼좀처럼 만족할 수 없었다.조선오이, 알타리무, 새우젓, 물오징어와 먹걸치, 메밀묵과 찹쌀떡 따위는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창밖을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싶었다.귀는 낯선 침묵에 피곤해지고입은 아무리 떠들어도 적적하기만 했다.               김광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지만]. 문지. 1998. 13. - 산문적인 이 시는 타국살이에서 오는 향수를 표현하고 있는데,.. 2024.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