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9 김억 - 여봅소 서관아씨 [한국현대대표시선 I] 여봅소 서관 아씨, 영명사 모란봉엔 오늘도 넘는 해가 빨갛게 불이 붙소. 서산에 불이 붙고, 동산에 불이 붙고, 대동강 복판에도 불빛이 붉소구료. 여봅소 서관 아씨, 이내의 열여덟엔 하소연한 심사의, 불길이 타는구료. 서관 - 황해도와 평안도 영명사 - 금수산 모란봉에 있던 유명한 사찰 이 시는 명료하고 형식도 아주 정형적이다(34조). '하소연한 심사의, 불길이 타는구료'라는 표현은 지금의 어법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소연하는'이라고 표현했다면 훨씬 더 쉽게 와닿을 것이다. 음보를 맞추기 위해서 다소 무리하게 축약한 것인가? 2020. 3. 13. 김억 - 봄은 간다 [한국현대대표시선 I]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 소리 비낀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어휘 : 내 - 냄새, 연기 이 시는 간결한 반면에 단조롭다. 형식미가 나름대로 있을 수 있으나, 개인의 정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짧고 단정적인 진술로 '설움'과 '애달픔' 정도의 막연한 감정 이상을 느낄 수 없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2020. 3. 13. 이성복 -- 1959년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 먹거나 이차 대전 때 남양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무기력과 불감증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수식했을 뿐 아무 것도 추억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 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춘화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왔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 2020. 3. 13. 황석우 - 벽모의 묘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터 되는 사막의 수풀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이 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감상) 일단 .. 2020. 3. 12. 이전 1 ··· 70 71 72 73 74 75 76 ··· 10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