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409

빙폭 1 -- 이영광 서 있는 물 물 아닌 물 매달려 거꾸로 벌받는 물, 무슨 죄 지으면 저렇게 투명한 알몸으로 서는가 출렁이던 푸른 살이 침묵의 흰 뼈가 되었으므로 폭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 흘려 보낸 물살들이 멀리 함부로 썩어 아무것도 기르지 못하는 걸 폭포는 안다 2022. 2. 22.
나팔꽃 - 이영광 가시 난 대추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 그 대를 망설이면서도 징하게 닿고 싶던 그날의 몸살 같아 끝까지 올라갈 수 없어 그만 자기의 끝에서 망울지는 꽃 봉오리, 사랑이란 가시나무 한그루를 알몸으로 품는 일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린 침묵 아니겠느냐 2022. 2. 21.
직선 위에서 떨다 - 이영광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2022. 2. 21.
주요한 - 불놀이 [한국현대대표시선 I]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西便)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 2020.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