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9 무제 -- 오형엽(83) 길을 걷다 문득 벼랑 두 개의 신화 속에 나오는 성곽 열리지 않는 문 48개의 창틀이 있는 방 책 갈피에 눌린 꽃 숲 속의 아이와 게 파이프와 환희 닭이 있는 환상 봉황새가 있는 풍경 풀잎과 새와 나무 나무 위에 물고기 복숭아 복숭아 속에 해바 라기와 아이 아이와 아이 가족 모두가 산을 넘는 생명들 숯과 크레용 아이들의 낙서 슬프게 담배불 붙이는 베레모 쓴 사람 걸레로 마루를 열심히 훔치 고 있는 이중섭 동숭미술관 1985. 5. 10 ~ 6. 8 붉 은 벽돌에 고삐를 맨 소가 하늘을 보고 있다 우물 물을 긷고 있었다 무명의 인적 하나가 눈을 껌벅거 리고 있었다 뿔을 허공에 박기 시작했다. [제1회 영문과 시낭송회](1985년) 2022. 3. 6. 서울 발 완행열차 -- 박상태(84) 익숙한 계집의 살갗처럼 달라붙는 밤 습관처럼 질겅거리던 단물 빠진 겨울이 시계 바늘에 몸을 심다. 한 겹씩 허물 벗는 어둠에 실려 녹슨 평행선 위로 흘러간다 엷어지는 하늘 위로 커가는 두려움 미처 깨지 못한 나태의 껍질 나는 또 다른 나를 새로운 겨울을 상대한다 스스로 피워야 할 봄 나의 나다움을 위한 마지막 탈락의 몸부림으로 맞이한 새벽 서울은 멀리서 떨고 있다. [제 1회 영문과 시 낭송회] (1985) 2022. 3. 6. 김경숙(84) -- 기다림 언제나 가슴 바싹 졸이는, 맨 처음의 설레임으로 가득 찬다. 어디에서나 우리들 사이에 놓여있던 저 단단한 다리의 가냘프고 섬세한 난간으로 그렇게 매달려 있다. 출렁이는 하늘을 내려다 보는 넓은 어깨를 가진 사내의 뒷모습처럼 그렇게 서 있다. 부등켜 안고 베어 무는 서로의 얼굴로서도 채워지지 않는 유리의 빈잔이 있다. 언제나 헤죽거리며 싸늘히 웃는 저 실낱같은 밤공기의 옷고름이 스르르 풀리는, 그러한 체념의 술로도 결코 다 마실 수 없는 빈 주전자가 있다. 2022. 3. 5. 여대운(85) -- 그늘 보채듯 앞장서는 태양 미워 따가운 헌 발바닥에 곰보길 싣고, 차오르는 땀내 햇살로 머리 빗는 처녀야 붙들어, 이 씨름 말려준다면 멀다온 길손처럼 잠깐 쉬어가도 좋으이 맡겨둔 그림자를 치고 눕자니 심지도 없는 애(哀)가 타고 더운 한숨이 불어 속절이 무성한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태양은 벌써, 서산 고개를 넘어설 참 성화가 길 끝을 흔드는데 붉은 줄을 긋고 있는데. [제1회 영문과 시 낭송회](1985) 2022. 3. 5. 이전 1 ··· 67 68 69 70 71 72 73 ··· 10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