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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8

매미 4 - 조태일 조태일, 매미 4 늦여름 매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클레인처럼 꽁지 오므리며 이승을 들어올린다. 읏쌰아 차차 매앰 매앰 읏쌰아 차자 매앰 매앰 콘크리트 옹벽에 바싹 붙어 이승을 단박에 들었다 놓더니 가을 속으로 저승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 2016. 8. 30.
매미 - 나 희덕 나희덕, 매미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날까지 흙 속에 날개가, 입이 부서져 푸른 등을 땅에 대고 눕는 날까지 이 땅에 올라온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짧고 단단한 목숨 때문은 아니다 한줄기 빛도 없는 흙 속에서 나무뿌리에 입을 대고 목청을 기른 시인, 벗겨진 허물들이 습작기.. 2016. 8. 30.
달팽이 - 박형준 달팽이 박형준 달팽이 한 마리가 집을 뒤집어쓰고 잎 뒤에서 나왔다 자기에 대한 연민을 어쩌지 못해 그걸 집으로 만든 사나이 물집 잡힌 구름의 발바닥이 기억하는 숲과 길들 어스름이 남아 있는 동안 물방울로 맺혀가는 잎 하나의 길을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두 개의 뿔로 물으며 끊임없이 나아간다 물을 먹을 때마다 느릿느릿 흐르는 지상의 시간을 등허리에 휘휘 돌아가는 무늬의 딱딱한 껍질로 새기며,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연기에 섞여 저녁 공기가 빠르게 세상을 사라져갈 때 저무는 해에 낮아지는 지붕들이 소용돌이치며 완전히 하늘로 깊이 들어갈 때까지, 나는 거기에 내 모습을 떨어뜨리고 묵묵히 푸르스름한, 비애의 꼬리가 얼굴을 탁탁 치며 어두워지는 걸 바라본다 [나는 이제 소멸에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지 2016. 8. 30.
곽재구 - 큰 눈 내리는 날 곽재구 - 큰 눈 내리는 날 한때 나는 눈이 似而非 革命의 숨결을 닮았노라 생각했었다 긴 긴 사랑의 한숨소리도 아니고 마디 마디 뼈 시린 고통의 눈빛도 아니고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빛나는 백합의 골짜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럭저럭 상심한 강물을 따라 흐르다 상심한 강물 속에 저.. 2016.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