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탁구장
이동훈
동네 탁구장에
몽실이를 닮은, 작은 체구에 다리를 조금 저는 아주머니가 있다.
상대의 깎아치기 기술로 넘어온 공은
되깎아 넘기거나 살짝 들어 넘기고
강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은
힘을 죽여 넘기거나 더 세게 받아칠 줄 아는 동네 고수다.
하루는 권정생 닮은, 빼빼 마른 아저씨가 탁구장에 떴다.
허술해 보여도 라켓 몇 개를 지닌 진객이다.
몸 좀 풀 수 있냐는 요구에
몽실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공을 받아주는데
조탑동의 인자한 그분과 다르게
이분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다.
이쪽으로 찌르고 저쪽으로 때리기를 반복하니
불편한 다리로 한두 번 몸을 날려서까지 공을 받아주던
몽실 아주머니가 공 대신 화딱지를 날렸다.
-- 이렇게 몸 풀려면 혼자 푸시고요.
-- 남 욕보이는 걸 취미 삼지 마시라요.
늙으면 곱게 늙으란 말도 보탰는지 어땠는지
사뭇 사나워진 분위기에
권정생 닮은 아저씨는 허, 그것참만 연발한다.
살살 치면 도리어 실례가 아니냐고
몇 마디 중얼거리긴 했지만 낭패스런 표정이 가시지 않는다.
이오덕처럼 바른 말만 하는 관장의 주선으로
다시 라켓을 잡긴 했지만
이점보다 눈에 띄게 위축된 아저씨는 공을 네트에 여러 번 꽂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탁구엔
이쪽저쪽을 삥 뽕 삥 뽕 넘나드는 재미가 있다
몸 쓰며 기분 내는 일이란
사람사이 간격도 좁히는 것이어서
탁구장 옆 슈퍼에서
몽실 아주머니와 권정생 아저씨가 우유로 건배를 한다.
아, 이 재미를
오줌주머니 옆에 찬 교회 종지기 권정생은
평생 누리지 못했겠구나.
이동훈. [몽실 탁구장]. 학이사. 2021. 26-27.
- 탁구 시는 보기 드물다. 서효인의 '탁구공'이 다소 난해한 대로, 탁구라는 스포츠 일반을 담아내려 했다면, 이동훈의 이 시는 탁구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시 형식으로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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