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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91

김광규 - 가을 거울 가을 거울                 김광규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고 난 뒤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후박나무 잎누렇게 바래고 쪼그라든 잎사귀옴폭하게 오그라진 갈잎 손바닥에 한 숟가락 빗물이 고였습니다조그만 물거울에 비치는 세상낙엽의 어머니 후박나무 옆에내 얼굴과 우리 집 담벼락구름과 해와 하늘이 비칩니다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갈잎들 적시며땅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마지막빗물이 잠시 머물러조그만 가을 거울에 온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2007. 24. - 시인의 섬세한 시선이 낙엽에 고인 빗물에 비친 세상에서 '온 생애'를 읽어내고 있다. 2024. 9. 5.
김광규 - 춘추 춘추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병술년 봄을 보냈다힐끗 들여다본 아내는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가을이 깊어갈 무렵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2007. 11. - 이 시는 포착하기 힘든 시각적 현상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고, 시 창작 과정이 시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또한 이채롭다. 봄에서 가을까지의 긴 시간, 시 창작의 어려움과 삶의 고달픔을 담고 있는 시이자, 그러한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담아내고 있다. 2024. 9. 5.
김광규 - 해변의 공항 해변의 공항                      김광규 고즈넉한 해변의 공항파리를 오가는 소형 제트기가 하루에네 차례 뜨고 내린다지중해의 눈부신 햇빛투명한 공기와 라벤더 향기 속에은빛 날개가 바다 위로 날아오른다11시에 통관대를 닫고 직원들은 점심 먹으러 나간다비행 스케줄을 잘못 잡은 외국 승객 몇 명만 남아 대합실을 지키다가2층 레스토랑으로 옮겨 안자오후 비행기 편 기다리며프로방스 포도주를 맛본다예정에 없이 한참 쉬어간 이곳을여행객들은 나중에 관광 명소보다 오래 기억할지도 모른다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86. - 시와 산문의 구분을 멋적께 하는 김광규. 이 짧은 묘사 밖으로 상상되는 많은 상황과 내용들이 이 시를 살아있게 한다. 2024. 9. 4.
김광규 - 가을 나비 가을 나비                    김광규 광장 가설무대의 조명과 소음이참을 수 없이 망막과 고막을 찢어대는 저녁시청 앞 광장 잔디밭에서 마주친 그노시인은 온기 없는 손으로악수를 건넸다걷기조차 힘든 육신을 무겁게 끌고어둠 속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모습되돌아보니 50년 전에 산책 한 권 이제는 겉장이 너덜너덜 해진 그의 시집서명이라도 받아둘 것을싸늘한 늦가을 밤 낙엽처럼떨어질 듯 자칫 땅에 닿을 듯힘겹게 날아가버린 가을 나비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21. - 죽음의 빛깔은 무슨 색일까? 2024.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