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김광규91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 김광규의 시에서는 비이성이 자리할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의식이 눈을 감은 시간인 꿈조차도 이성적으로 풀어버리는 느낌이다. 김광규는 그렇다면 광대한 시의 원천을 버려두고 있는 것인가? 이 열 한 번째 시집에는 김태환의 지적처럼 약한 존재, 기미로 찾아오는 존재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 김태환 - 약한 존재의 시학 -- 시인의 열번째 시집에 부쳐119) 김광규의 시는 약한 존재들에게 바쳐진다. 약한 존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에 근접한 존재, 무의 미덕을 갖춘 존재, 자기가 없는 듯이 물러남으로써 타자가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2024. 9. 3. 김광규 - 원 달러 원 달러 김광규 바다처럼 넓어 수평선 까마득한 호수누런 흙탕물 가로질러 거센 물결 일으키며관광객 10여 명 태운 모터보트가 달려간다목제 어선에 폐차 핸들을 붙인사제 유람선이다수상 가옥과 갈대숲이 금방 멀어지고배는 호수 한가운데 멈춰 선다가이드가 항로를 설명하는 동안작은 카누 한 척이 서둘러유람선으로 다가온다한 손에 아기를 안고또 한 손으로 노를 젓는 엄마 옆에서큰 뱀을 목에 감은 어린애가손바닥을 벌리며 원 달러원 달러. . . 외쳐댄다물 위를 떠돌며 사는선상 난민 가족이다관광객들이 미처 사진을 찍기도 전에시동을 건 모터가 사나운파도 일으켜 난민선 쫓아버리고뱃머리를 돌린다 원 달러원 달러 . . . 보트피플과 관광객들 사이의 유일한 통용어 원 달러가 모터보트 소음 속에 사라져버린다 김.. 2024. 9. 2. 김광규 - 낯선 간이역 낯선 간이역 김광규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간이역마다 서며 가며3시간쯤 달려왔다경지 정리가 안 된 먼 시골논밭을 지나난간 없는 다리를 건너도룡농이 많이 산다는 산자락을 빙 돌아서터널을 통과하니 저 아래눈 덮인 계곡 한가운데초라한 교회 종탑이 서 있는 마을낯선 간이역에 도착했다승하차 여행객도 별로 없고멀리 산 중턱에 조그만 암자가 보이는 곳여기는 아무도 모를 것 같아반세기를 이어온 인연 모두 끊어버리고홀로 여생을 보내고 싶어지는 곳여기서 내릴까내려서 주저앉아버리까망설이는 사이에 호각 소리 울리고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차츰 멀어지는 그곳몇 번이고 되돌아보면서 나는또다시 기회를 잃어버렸다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72-73. - 현실을 벗어나 낯선 .. 2024. 9. 2. 김광규 - 가난의 용도 가난의 용도 김광규 달동네 좁은 골목 언덕길로연탄을 날라다 주고독거노인과 소녀 가장에게 남몰래쌀과 김치 보내준가난한 이웃들의 이름아무도 모른다빈민 운동가로 막사이사이 상을 타고빈곤층 대변하던 그 국회의원누구인가우리는 알고 있다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공표한 명망가도 있었다중산층이나 부자보다 빈민들의 수효가훨씬 많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던의회주의자 그는가난의 용도까지 속속들이 깨달은 뛰어난 정치인이었다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인간은무리 지어 떠도는 불쌍한 정치적 동물 아니냐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64-65 - 가난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시. 2024. 9. 2. 이전 1 2 3 4 5 6 7 8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