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446 이영광 - 고복 저수지 고복 저수지 이영광 고복 저수지 갔다 최강 한파가 보름 넘게 못물 꽝꽝 얼려놓았다 저수지 주변 매운탕 집 메기들이 이곳 출신이 아니라는 뻔한 사실 하나를 입증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증거가 필요하다 광범위는 광범위보다 더 넓다 전부니까 그게 사실인데도 우리는 더 얘기했다 두 달 만이었고 화제는 쉽기만 하고 짜증스러운 정치여서, 이 추위 가고 날 풀리면 혹 메기수염 매단 메기들이 풍악처럼 물살에 밀리는 자연을 볼까, 자연산을 볼까, 깔깔거렸다 고복 저수지 다시 갔다 최강 한파가 한 달 넘게 못물 꽝꽝 얼려 놓았다 뻑뻑한 죽을 젓듯 떠다니거나 펄에 웅크려 겨울을 나는 메기들의 마른 유족들이 얼음장 아래 없다는 뻔한 소문 하나를 팔기 위해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위증이 필요하다 광범위는 광범위보다 더 넓다 .. 2024. 10. 18. 이영광 - 저수지 저수지 이영광 마른 아랫배가 쩍쩍 갈라지자 저수지는 물 빠진 빈 그릇이 되었다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이 되었다 울음은, 풍매화 홀씨들을 공중에 날려 보내는텅 빈 바람으로 떠났다가돌아와 꽃대궁을 흔드는 고요로 머물다가마른 땅 밑 먼 수맥을 아슬히 울린다 저 물 빠진 황야로 걸어 들어가한나절을 파헤치던 사람들과주둥이를 빼고 목메다 간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지는 약손이 된다 작은 울음들이 목청껏 울고 간 먼 골짜기까지가 울음의 커다란 입이다챙챙거리는 소리들이 간신히 잠든 지층까지가울음이 고요히 타는 입이다 나는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 귀기울여본다큰 울음은 작은 울음들로 빽빽하다큰 울음은 오늘도 울음이 없다 이영광. [그늘과 사귀다]. 랜덤하우스. 2007. 78-79.. 2024. 10. 18. 이영광 - 마른 저수지 마른 저수지 이영광 잔물결도 패거릴 지어 몰려다니면죽음의 커다란 입이 되지요번쩍이는 죽음의 이빨들이 되지요석삼년에 한번쯤 인육을 삼키던 이 저수지는백년간 서너 차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죽음의 말라붙은 입속을 샅샅이 파헤쳐보았지만사라진 몸, 데리고 나온 적 없습니다살덩이를 뼈째로 녹이며 큰 물결들이깊은 곳에서 거칠게 찢어선 삼켰겠지요물 빠진 저수지 바닥엔 흙먼지들이 몰려다니고굶주린 바람이 서로 부딪쳐 으르렁대고 있어요물을 호령하여 사람을 빨아당기던 그놈들이요,구름처럼 무정한 흑막입니다어서 새 옷을 입혀달라고 악다구니하며벌거벗은 괴수들이 뛰어다니고 있어요골짜기 가득 황량한 아가리를 벌리고 십년 만에 또 한번 대청소를 하고 있어요 이영광. [아픈 천국]. 창비. 2010... 2024. 10. 18. 가볍게 가볍게 바람 가득 넣어 통통 튀는 테니스 공처럼가볍게 가볍게 바닥으로 바닥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불면의 밤은 싫어 위기의 순간물 위를 겁나 빠르게 달리는 어떤 도마뱀처럼가볍게 가볍게 중력을 벗어나지구 밖으로 날아가는 그런 풍선처럼가볍게 가볍게 2024. 10. 18.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13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