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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리 그 길에서 이 길의 주인은 풍경이다가을을 두드리는 비가젖은 논이며, 집이며, 나무와 먼 산을 다시 적시고낡은 우산을 뚫고 들어와 나를 적시고소리로 가득 찬 적막을 나는 걸어간다풍경이 주인인 이 길을 걸어간다슬픔은 지나갔어도슬픔의 기억은 떠날 줄 모르고우산을 뚫고 나를 적시는 비처럼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린다논두렁을 따라 난 이 좁은 길은어디쯤에서 끝이 나는가그래,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만 슬퍼하자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길은 이어지고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져 가고도랑물은 와랑와랑 울어 젖히는데난데없이 빗속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빗속을 떨치고날아오르는 새한 마리 * 시우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20050831)      .. 2024. 9. 11.
탁구의 길 15 - 상대방 탁구대에 넘기면 이긴다 상대방 탁구대에 넘기면 이긴다아니,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이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에는 하지만, 그러니까, 수십 편의 논문으로도수십만 번의 스윙으로 풀지 못한, 풀릴 수 없는수수께끼가 있다 상대방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생각을 넘은 생각으로 상대방의 허를 찌를 때찔리는 척 허를 피하고상대방의 혈을 누를 때눌린 혈에서 새순이 돋아나듯꽃이 피어나듯새로운 자각이 들어설 때 (계속) 2024. 9. 11.
김광규 - 누렁이 누렁이                  김광규 두 앞발 가지런히 모으고양쪽 귀 쫑긋 세우고못 보던 누런 토종개 한 마리포장도로 길가에 앉아 있네뒷발로 벌떡 일어서 반갑게맞이할 주인 어디로 갔나날이 어두워도 나타나지 않에혼자서 음식 쓰레기 주워 먹고자동차 지나갈 때마다꼬리 몇 번 흔드는 누렁이길바닥에 내려놓고사라진 주인 돌아오지 않네벌써 며칠째인가 온종일SUV 달려간 쪽 골똘히 바라보며슬픔에 지쳐버린 누렁이맥없이 길가에 엎드려 있는황색 유기견 한 마리 김광규. [오른손이 아픈 날]. 문지. 2016. 72. - 자기를 버린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황색 유기견의 슬픔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 개의 슬픔이 배가 되는 것은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4. 9. 11.
잉글리쉬 페이션트 - 안소니 밍겔라(English Patient - Anthony Minghella). 1996 (19980120 공책에 적은 것을 옮김)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대해서는 감독도, 주연 남녀배우도, 이 영화가 소설에 바탕을 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된 셈이다. 물론 이 영화를 먼저 본 상화 형이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보내는 걸 들었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수상했다는 점, 또 줄리에트 비노쉬와 윌리엄 데포 등의 조연은 낯에 익은 사람이었다는 점 등은 이 영화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전무하지는 않다는 걸 말해 준다.  (전체적 느낌)전체적 느낌은 우선 상화 형이 이야기한 것만큼 훌륭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영화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많이 있다. 특히 한나의 애인 킵이 그녀를 성당으로 데리고 가, 높다란 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202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