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5469

이윤학 - 가을 저녁 빛 가을 저녁 빛                                     이윤학 비탈밭 고구마를 캐 한 짐지개에 져오는 아버지 숨소리멀거니 밀물 든 서해바라보는 휘는 억새꽃누진 솔가지 타는 냄새낮은 산허리 감는 연기 이윤학. [곁에 머무는 느낌]. 간드레. 2024. * 누진 - 누지다 : 습기를 먹어 축축한 기운이 있다. - '한 짐'에서 행갈이를 한 것이 고구마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3행의 '멀거니'라는 다소 생경한 표현도 '밀물'과 어울려 조응을 한다. 억새꽃은 서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휘기까지 한다. 여기서도 어떤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저녁연기. 클리세적인 노을이 빠진 것은, 고즈늑하고도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가운데에서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게를 .. 2024. 9. 19.
탁구 시 두 편 탁구공                   서효인   내게 무엇을 받을 것인가 바라지 말고,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해, 공격과 수비에 대해, 낮과 밤에 대해, 파리와 나비에 대해 생각해 봐,  사각형의 세계는 늘, 받은 만큼 돌려준다, 독재자의 눈빛을 번득인다, 속임수를 쓴다, 모든 지나감을 아까워한다, 쉽게 탄식한다, 공을 주우러 가는 사내들, 화가 난 양이 된다,  주고받음의 문제에 대해, 작은 공에서 일어나는 회전에 대해, 사이좋게 나눠 갖는 서브의 권리에 대해, 종교인처럼 말이 많다,   저 너머의 세계로 당신의 공을 떨어뜨릴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 네트마다 그려진 빨간 해골과 친절한 아침밥에 대해, 협박과 편지에 대해, 망루와 난망에 대해, 녹색의 세계는 반드시 서효인.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 2024. 9. 18.
이동훈 - 몽실 탁구장 몽실 탁구장                         이동훈 동네 탁구장에몽실이를 닮은, 작은 체구에 다리를 조금 저는 아주머니가 있다.상대의 깎아치기 기술로 넘어온 공은되깎아 넘기거나 살짝 들어 넘기고강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은힘을 죽여 넘기거나 더 세게 받아칠 줄 아는 동네 고수다.하루는 권정생 닮은, 빼빼 마른 아저씨가 탁구장에 떴다.허술해 보여도 라켓 몇 개를 지닌 진객이다. 몸 좀 풀 수 있냐는 요구에몽실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공을 받아주는데조탑동의 인자한 그분과 다르게이분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다.이쪽으로 찌르고 저쪽으로 때리기를 반복하니불편한 다리로 한두 번 몸을 날려서까지 공을 받아주던몽실 아주머니가 공 대신 화딱지를 날렸다.-- 이렇게 몸 풀려면 혼자 푸시고요.-- 남 .. 2024. 9. 18.
관천리에서 하나의 강이 그 생명을 다하고더 큰 강으로 흘러드는 곳,웬일인지 강물은 호수보다 잔잔하고가을 햇살 또한 차가운 듯 따사합니다노랗게 붉게 물든 산이 눈을 즐겁게 하고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강 건너 아득한 개 짖는 소리마저정겹게 들립니다햇살이 물 위에 어룽져무수한 은빛 비늘을 뒤척이고사람 소리 차 소리 숨죽인하염없이 평온한 이 광경을바라보기만 해도 완성되는 한 편의 산수화를하루 왼종일잡생각 떨쳐버리고마냥 들이킬 수 있을 듯합니다달랠 수 없는 핏빛 눈물 하나깊어가는 가을 투명함 속에 풀어버리고 * 관천리는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20141110)       .. 2024.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