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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196

기저귀를 갈면서 육십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으니아이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생에 기저귀를 갈 일은 없으리라 했는데엄마는 나이가 너무 많아 한 살이라고 우기더니진짜 한살배기처럼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었다초보 땐 누구나 그러하듯기저귀 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좌우는 물론 위아래도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엄마가 아무리 한 살이라고 우겨도몸피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모르긴 해도 애기 기저귀 채우기보단갑절 이상 어려울 듯엄마는 똥오줌을 못 가리는,울고 떼를 쓰는 자식이그래도 언제나 사랑스러웠을까?지린내와 구린내마저 역겹지 않았을까?엄마의 젖을 문 나는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했을까?  이상하게 역전된 엄마와 나의 관계연신 신음소리를 흘리며무신 미련이 남아 이 지랄이고를 되뇌는 엄마 앞에서, 2024. 8. 30.
저수지 순례 저수지라면 으레 낚시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한다면저수지를 찾는다고 저수지만 찾는다고 믿는다면저수지의 저자도 모르는 자이다까닭도 이유도 없이 저수지 덕후가 되어저수지란 저수지는 모조리 다 헤집고 다닌 지 어언 오십하고도 구 년저수지를 찾아일단 제방 위에서 일별한 뒤둘레길이 있으면 한 바퀴 따라 돌고 없으면 그냥 물 위를 걷는다(물론 사람이 있을 때는 걷지 않는다)저수지는 커지면 거대한 댐을 지닌 **호가 되고정말 큰 놈은 한반도를 집어넣고도 헐렁할 정도,그런데 작은 놈은 소류지요, 연못이요, 아예 둠벙이다씨알 굵은 붕어라도 건지려면적어도 적어도라는 말을 피할 정도는 되어야겠지만무작정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저수지를 저수지로 완성시켜 주는 건팔 할이 풍광이라,저수지를 감싸 안은 산이며산.. 2024. 8. 28.
화금지, 수요일 화요일이나 금요일에 찾아야 마땅할 듯하지만불의 날이나 쇠의 날보다는 물의 날이 오히려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겨울답지 않게 햇살이 따사로와미세먼지 정도야 애교로 웃어넘기며두 다리의 힘을 적당히 풀고 돌아본다 남은 생각 하나마저 제방 위에 풀어버리고는물결이 물넘이를 넘을 듯 말 듯 희롱하는 모습에잠시 동참하기도 한다  마실 나선 어르신도목적지에 목마른 차량도 눈에 띄지 않는,만나기 힘든 고요만 다리쉼을 하는 곳 올백으로 한껏 멋을 부린 후티티 한 마리떠나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난 것도 잊어버린 채고요를 응시하고 있다  * 화금지는 경북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에 위치한 저수지인데,  화산리와 저수지 아래쪽에 위치한 금곡리에서 한 자씩 따와 이름을 지었다. 2024. 1. 25.
저수지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와 저수지는 언제부턴가 거기에 있었지 현재도 거기에 존재하고 아마도 당분간은 거기에 있겠지 겨울엔 얼어붙어 죽음보다 고요한 잠을 자기고 하고 세상이 싫어졌나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임장을 하지 않아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또는 필력이 만갑인 어느 필자의 손 끝에서 용트림이라도 할 듯 수려한 모습을 뽐내지만, 고봉을 오르는 듯 힘겨이 제방에 올라 섰을 때, 하늘과 산과 물이 모두 다 같은 푸른 빛이자 또 동시에 다 다른 푸른 빛일 때, 산을 넘어온 바람이 코끝을 희롱하고 물결은 찰랑찰랑 둑과 힘 겨루기를 하고 인기척에 놀란 오리들이 푸다닥 날개짓을 할 때, 바로 그 때, 바로 그 순간, 저수지는 내 몸을 뚫고 들어와 피를 타고 돌며 소근소근 속삭이는 거야, 2024. 1. 14.